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
잘 있거라, 짧았던 밤들아
창밖을 떠돌던 겨울안개들아
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, 잘 있거라
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
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
잘 있거라,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
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
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
기형도 ,「빈집」, 『입 속의 검은 잎』, 문학과지성사, 1989
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
잘 있거라, 짧았던 밤들아
창밖을 떠돌던 겨울안개들아
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, 잘 있거라
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
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
잘 있거라,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
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
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
기형도 ,「빈집」, 『입 속의 검은 잎』, 문학과지성사, 1989
求道 - 이성선
세상에 대하여
할 말이 줄어들면서
그는 차츰 자신을 줄여갔다.
꽃이 떨어진 후의 꽃나무처럼
침묵으로 몸을 줄였다.
하나의 빈 그릇으로
세상을 흘러갔다.
빈 등잔에는
하늘의 기름만 고였다.
하늘에 달이 가듯
세상에 선연히 떠서
그는 홀로 걸어갔다.
겨울 풍경
- 장만호
술을 먹고 집으로 가는 길
숨죽인 화계사를 건너고 국립 재활원을 지나다 보면
서서히 일어나 하나, 둘 셋 ······
별들을 이어 별자리를 긋듯 손을 잡는 아이들
휠체어를 타거나 지체 부자유한 별들
밀거나 당겨주며 수유리의 밤을 온 몸의 운동으로
순례한다, 길 밖에 고인 어둠만을 골라 딛으면서
몸이 곧 상처가 되는 삶들을 감행하며
흔들리는 平生을, 과장도 엄살도 없이 흔들며 간다
그 모습 가축들처럼 쓸쓸해
왜 연약한 짐승들만 겨울잠을 자지 않는지
작은곰자리에서 내려올 눈발을 헤치며,
왜 사람만이 겨울에 크는지,
묻고 싶었지만
아이들은 여전히 붕어빵을 입에 물고는
風警처럼 흔들리며 간다
깨어 있으려고
흔들려 깨어 있으려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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내가 학교를 다니면서 3학기동안 시강의를 해주신 교수님 시다..
그냥 이런 느낌의 시가 좋고..
이런 시를 쓰고 싶고..
교수님과 술을 마시면서 물어봤었다..
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..
마치 겨울풍경에서 도망처나온 휠체어 처럼..